휴가 장소 문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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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작성일05-07-18 11:33 조회3,420회 댓글0건본문
안녕하십니까?
경북 상주시 모동면의 포도재배농민 정의선입니다.
이곳을 방문한 조합원 중에서 휴가를 근처에서 보냈으면 하는 요청들이 있어 참고로 몇 가지 알려드립니다.
숙박은 포도주공장 사무실(약 20평- 큰방 1, 작은방 1, 거실, 샤워 및 화장실 1)과 공장에 딸린 방(약 15평-방 1,거실, 샤워 및 화장실 1)이 있어 몇 가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싱크대와 취사도구가 있고 인근 잣나무 단지에서 텐트를 활용 할 수도 있습니다.
물놀이는 인근 백화산(해발 933m)의 계곡을 이용할 수 있으며 간단한 채소등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나물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비용에 대해 문의가 많은데 저희는 내년이나 다음에 올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민박에 해당된다는 금액만큼 자발적으로 계산하시면 그 돈은 적립하여 잣나무단지 간이 화장실등과 쾌적한 환경을 위한 도배등에 사용하겠습니다.
포도는 지금부터 8월 말까지 하우스 재배 저농약포도등이 나오므로 소개는 해드립니다만 저희 영농조합 회원은 아닙니다.
기타 자두, 8월초의 여름 사과등이 구매하고 시식할 수 있는 먹거리가 될 것입니다.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추풍령 IC까지 3시간 소요되며 김천역에서 30분 거리입니다.
휴가 날짜등을 미리 연락 주시면 일정을 조정해드리겠습니다.
http://www.podoo.com 011-535-3806
백화산
모동면과 충북 영동군 황간의 경계에 있는 이 산은 상주시의 삼 명산의 하나다. 이 산의 최고봉은 한성봉(漢城峰)인데 일명 한성봉(恨城峰)이라 한 것은 몽고의 차나대(車羅大)가 침공하여 성을 넘지 못하여 한탄한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이 산은 국토방위의 명산으로 일컬어졌으니,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첫 백제 정벌시(660년)는 태종무열왕이 이 곳 금돌성(今突城)에서 한 달 여를 머물렀으며 고려 때는 몽고의 차나대(車羅大)가 1254년 침공시 이곳에서 참패하였으며, 임진왜란에는 용추에 향병소가 있었다.
신라 통일기에 생긴 대궐 터를 비롯해 몽고란 대첩으로 생긴 저승골, 방성재, 금돌성 등이 있고, 중모천(龜水川) 따라, 사담(沙潭)·난가대와 상산의 탄금대로 일컬어진 신라충신 임천석(탄금가)이 절사한 임천석대가 있고, 진불암, 보문암, 용문사지가 있으며 산의 동쪽에 보현사와 용추가 있다. 이 산은 서로 만경산(萬京山)을 사이로 구수천(龜水川)을 금강으로 보내는 계곡의 절경과 정상 부위의 금돌성, 대궐터 일대는 현장으로서 관광·교육의 제공 처로 의연히 서 있다.
금돌성은 모동면 사무소로부터 서쪽으로 약 6km 지점인 백화산에 있고 주위 총연장 20km에 달하며 요소 요소에 성의 무너진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상주는 신라시대 북방 경략을 위한 군사요지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특히 백제와는 더욱 더 많은 지역이 연접되어 있어서 서역은 항상 접전지가 되어 있었다.
삼국사기나 동국여지승람등에 의하면 백제가 신라를 침략함에 진덕왕 때 김유신장군을 상주 행군대총관으로 삼아 백제를 격파하였고 무열왕 때에 이르러는 왕 7년 6월에 태자에게 명하여 대장군 김유신은 품일, 흠춘 등과 더불어 5만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도록 하고 왕은 <금돌성>으로부터 소부리성에 이르러서 제감 천북을 당나라로 파견하여 전승을 알렸다는 것이다.
이 기록상의 <금돌성>과 무열왕이 행차한 곳이 현지의 전설이나 현 읍지인 <중산지>의 기록과 현지 조사에서, 모동 백화 산성이 바로 금돌성이라는 추정이다. 이곳 산성을 세분하면 석문, 내외 성지, 옥문곡 대궐터, 창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봉리 옥동서원에서 앞개울을 건너 북쪽 계곡을 따라 올라 가면 외성지가 나서고 여기서 1.5km 쯤 더 가면 보문곡이다. 그 위에 대궐이 있었으므로 그 입구의 문이라는 뜻에서 붙혀진 속명이다. 지금도 이 골짝에서는 양쪽 산등성이로 곳곳에 성지가 있다. 1978년 80m를 정부의 국방유적 보수사업 계획에 의한 원형복원을 상주시가 시행했다. 과연 이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산이 되는 동시에 사방을 지키고 또 지배할 수 있는 천연적인 조건을 구비한 요새임을 알 수 있다
경북 상주시 모동면의 포도재배농민 정의선입니다.
이곳을 방문한 조합원 중에서 휴가를 근처에서 보냈으면 하는 요청들이 있어 참고로 몇 가지 알려드립니다.
숙박은 포도주공장 사무실(약 20평- 큰방 1, 작은방 1, 거실, 샤워 및 화장실 1)과 공장에 딸린 방(약 15평-방 1,거실, 샤워 및 화장실 1)이 있어 몇 가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싱크대와 취사도구가 있고 인근 잣나무 단지에서 텐트를 활용 할 수도 있습니다.
물놀이는 인근 백화산(해발 933m)의 계곡을 이용할 수 있으며 간단한 채소등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나물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비용에 대해 문의가 많은데 저희는 내년이나 다음에 올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민박에 해당된다는 금액만큼 자발적으로 계산하시면 그 돈은 적립하여 잣나무단지 간이 화장실등과 쾌적한 환경을 위한 도배등에 사용하겠습니다.
포도는 지금부터 8월 말까지 하우스 재배 저농약포도등이 나오므로 소개는 해드립니다만 저희 영농조합 회원은 아닙니다.
기타 자두, 8월초의 여름 사과등이 구매하고 시식할 수 있는 먹거리가 될 것입니다.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추풍령 IC까지 3시간 소요되며 김천역에서 30분 거리입니다.
휴가 날짜등을 미리 연락 주시면 일정을 조정해드리겠습니다.
http://www.podoo.com 011-535-3806
백화산
모동면과 충북 영동군 황간의 경계에 있는 이 산은 상주시의 삼 명산의 하나다. 이 산의 최고봉은 한성봉(漢城峰)인데 일명 한성봉(恨城峰)이라 한 것은 몽고의 차나대(車羅大)가 침공하여 성을 넘지 못하여 한탄한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이 산은 국토방위의 명산으로 일컬어졌으니,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첫 백제 정벌시(660년)는 태종무열왕이 이 곳 금돌성(今突城)에서 한 달 여를 머물렀으며 고려 때는 몽고의 차나대(車羅大)가 1254년 침공시 이곳에서 참패하였으며, 임진왜란에는 용추에 향병소가 있었다.
신라 통일기에 생긴 대궐 터를 비롯해 몽고란 대첩으로 생긴 저승골, 방성재, 금돌성 등이 있고, 중모천(龜水川) 따라, 사담(沙潭)·난가대와 상산의 탄금대로 일컬어진 신라충신 임천석(탄금가)이 절사한 임천석대가 있고, 진불암, 보문암, 용문사지가 있으며 산의 동쪽에 보현사와 용추가 있다. 이 산은 서로 만경산(萬京山)을 사이로 구수천(龜水川)을 금강으로 보내는 계곡의 절경과 정상 부위의 금돌성, 대궐터 일대는 현장으로서 관광·교육의 제공 처로 의연히 서 있다.
금돌성은 모동면 사무소로부터 서쪽으로 약 6km 지점인 백화산에 있고 주위 총연장 20km에 달하며 요소 요소에 성의 무너진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상주는 신라시대 북방 경략을 위한 군사요지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특히 백제와는 더욱 더 많은 지역이 연접되어 있어서 서역은 항상 접전지가 되어 있었다.
삼국사기나 동국여지승람등에 의하면 백제가 신라를 침략함에 진덕왕 때 김유신장군을 상주 행군대총관으로 삼아 백제를 격파하였고 무열왕 때에 이르러는 왕 7년 6월에 태자에게 명하여 대장군 김유신은 품일, 흠춘 등과 더불어 5만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도록 하고 왕은 <금돌성>으로부터 소부리성에 이르러서 제감 천북을 당나라로 파견하여 전승을 알렸다는 것이다.
이 기록상의 <금돌성>과 무열왕이 행차한 곳이 현지의 전설이나 현 읍지인 <중산지>의 기록과 현지 조사에서, 모동 백화 산성이 바로 금돌성이라는 추정이다. 이곳 산성을 세분하면 석문, 내외 성지, 옥문곡 대궐터, 창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봉리 옥동서원에서 앞개울을 건너 북쪽 계곡을 따라 올라 가면 외성지가 나서고 여기서 1.5km 쯤 더 가면 보문곡이다. 그 위에 대궐이 있었으므로 그 입구의 문이라는 뜻에서 붙혀진 속명이다. 지금도 이 골짝에서는 양쪽 산등성이로 곳곳에 성지가 있다. 1978년 80m를 정부의 국방유적 보수사업 계획에 의한 원형복원을 상주시가 시행했다. 과연 이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산이 되는 동시에 사방을 지키고 또 지배할 수 있는 천연적인 조건을 구비한 요새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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